꾸물거리는 사람의 마음 속 [그정이]
대학을 다닐 때 제출해야 할 과제가 많았죠. 보통의 학생은 적절하게 과제진행의 양을 분배할 것입니다. 처음에 조금씩 시작하고 나중에 더 많은 양을 하면 일이 무난하게 끝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지막 날에 과제를 몰아서 끝내버리죠. 모든 과제들이 그랬습니다.
90쪽의 졸업논문을 써야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었죠. 평소와 같이 하면은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죠.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하고 중간에 조금 더 속도를 높이고 마지막 부분에 시간을 더 쏟는 것입니다. 계단식으로 말이죠. 계단을 오르는 게 뭐 힘들겠습니까? 그리고 몇 달 뒤에 계획을 수정했죠.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아서 처음 단계 계단은 사라지고 중간과 끝 계단이 높아졌습니다. 그래도 뭐 이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간 달도 지나고 쓴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정했죠.
두 달은 한 달이 되고 그것이 또 2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보니 3일 밖에 안남았습니다. 한 글자도 안쓴 상태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틀 밤을 새고 90쪽을 썼습니다. 잠도 안자고 말이죠. 결국에는 그렇게 졸업논문을 제출했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논물이었죠.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벌어지는 일과 왜 우리가 미루는 지에 관한 가설을 세워봤습니다.
뇌 속에는 모두 '합리적인 의사결정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루는 사람의 뇌에는 '순간 만족감 원숭이'도 있습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자는 키를 잡고 항상 합리적인 의사대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그걸 싫어해서 이렇게 말이죠.
"유튜브를 열고 새로 올라온 영상을 몽땅 보자고.", "그리고 냉장고에 가서 10분 전보다 새로운 것이 없는 지 보자.",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미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순간적 만족 원숭이는 쉽고 재밌는 것만 좋아합니다. 이 원숭이는 잘자고, 먹고, 번식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일이니까요.
하지만 합리적 의사결정자는 고도의 합리적인 일을 해야합니다.
가끔은 서로의 뜻이 맞아 절충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죠. 때로는 재밌지 않아도 일을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일 때도 있어요. 보다 큰 뜻을 위해서입니다. 이럴 때 갈등이 생깁니다. 일을 미루는 사람은 마지막은 항상 이렇게 납니다. 합리적 왕국에서 벗어난 원숭이 왕국에서 시간을 보내죠. 사실은 여기서 놀 때가 아닌데 여기서 놀고 있습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있으면서요.
이런 사람을 합리적 왕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를 도와주는 게 패닉이라는 괴물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휴면상태이지만 이 괴물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경력에 재앙이 닥치거나, 무시무시한 후환의 위험이 닥칠 때입니다.
유일하게 순간 만족감 원숭이가 두려워하는 존재이기도 하죠.
마감기간이 다되어가면 패닉괴물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난리가 납니다. 패닉 괴물을 두려워하는 원숭이는 도망가고 드디어 합리적 의사결정자가 키를 잡기 시작합니다.
앞에 나온 이 세 인물로 미루는 사람에 대한 시스템을 설명합니다.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도 공감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알고보면 두 가지 종류의 미루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미루기는 마감기간이 있는 미루기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모든 예시에는 마감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한이 있을 때는 미루기 기간이 줄여듭니다. 패닉괴물이 깨어날테니까요.
하지만 두 번째 종류의 마감기간이 없는 미루기입니다. 기한이 없을 때 생깁니다. 예술이나, 사업, 자영업에는 마감기간이 없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무엇인가 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결국에는 패닉괴물에게 의지하기만 한다면 계속 미루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단히 장기적인 불행에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미루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세요. 교묘한 원숭이의 계략은 마감기한이 없을 때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말씀해드립니다. 인생달력이라고 부르는데, 90년의 인생에 한 주마다 상자가 하나씩 있습니다. 상자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꽤 많이 써버렸죠. 우리는 정작 무엇을 미루고 있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원숭이를 경계해야합니다.
아마 오늘부터 바로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아니면 곧이라도요.
우리는 모두 꾸물거리는 면을 가지고 있다. 당장에 해야하는 일이지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정당한 이유를 붙이기까지 한다. 상황은 바뀌는 것이 없지만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그 일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 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원숭이의 개입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한다면 원숭이를 치워버릴 수 있다.